생활의발견2010. 8. 16. 09:26
토요일 오전 내내 빈둥거리는 게 보기 싫었던지 아내가 챌시마켓에 가자고 한다.
마침 막 심심하려고 하던 터라 얼른 머리를 감고 옷을 챙겨입고선 집을 나섰다.

옷 가게, 서점, 쵸컬릿 상점 등을 구경하고 생선 가게에서 생선회와 크램 차우더 스프로 허기도 달랜 뒤,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완소 주방용품 가게를 발견한 덕분에 뚜껑이 달린 고풍스런 유리병 2개와 수저 받침,
그리고 손쉽게 야채를 다질 수 있는 Chopper 하나까지 총 $19에 구입했다.

남은 시간 동안 무얼할까 하다 그 옆에 자리한 High Line을 걸어 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지가 작년 이 맘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한번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근처를 지나는 경우는 많았는데 그때마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던 도중이라 어찌 한번 걸어보질 못했다. 

하이라인은 간단히 말해 북부 뉴욕에서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지상 철도로,
이것을 허물지 않고 시민들이 거닐고 쉴수 있도록 공원으로 개조해 작년에 공개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작년에 내가 쓴 글에서 볼 수 있다.
 High Line에 관한 지난 글 -> 천공의 공원, High Line  



아내와 함께 접근한 곳은 14가로 그곳에 마련된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실내를 노란 시트지로 붙여 두었는데 위 사진에서 보듯 밍밍한 유리보다는 재미나다.



물론, 1억 달러 이상이나 이곳에 투자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어지진 않지만
막상 두 눈으로 보며 걸으니 신문이나 TV에서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이 있는 듯 하다.
그 종이 다양하진 않지만 도심에서 흔히 보는 식물들이 아닌지라 나무들 보는 재미도 있고 말이다.



또 조금이나마 높은 각도에서 도심을 내려다 보는 재미도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교탁 위에 올라서서 한 마디씩 외치라고 권유하면서
'조금만 각도를 달리해서 사물을 바라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이 정도의 말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도시에서 살다보면 종종 이 말의 속내를 절감하게 된다.
조만간 관광객들이 주로 타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맨하튼을 한번 돌아봐야 겠다.



하이라인 공원 내에서 내 눈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벤치였다.
다양한 형태의 벤치들이 공원 곳곳에 만들어지거나 배치되었는데, 그 중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은
옛 철도를 그대로 보존한 채 마치 작은 기차가 연상되도록 나무로 제작된 벤치에 바퀴를 달아두었다.
물론, 뒤쪽에 고정된 기둥이 있어 움직일 순 없었는데 움직이게 해 두었어도 꽤 재미있을 뻔 했다.
특히 이곳의 벤치들은 등받이가 있고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을만큼 폭이 길고 넓어 비교적 인기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세지 나무'다.
실제 학명이나 흔히 부르는 명칭이 있겠지만, 이렇게 부를 때 그 느낌이 너무 좋아 한번도 찾아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실수로 보면 모를까 굳이 애써가며 찾아보진 않을 생각이다.
소세지 나무, 소세지 나무, 소세지 나무, 소세지 나무, 소세지 나무, 소세지 나무, 소세지 나무, ... 아, 좋다! 





위 사진은 대략 17가 즈음에 있던 곳으로, 공연장을 바라보는 것처럼 계단식 벤치를 만들어 두었는데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앞에 세워진 대형 유리창으로 통해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전경을 볼 수 있다.





비록 폭도 좁고 등받이도 없지만 인상적인 외형을 지닌 벤치와 최소한의 공간 만을 남겨두고 심어진 나무들.
특히 하이라인 내 17가부터 18가 사이에 놓인 벤치들은 FSC(산림관리협의회) 인증의 IPE 나무(브라질 자생)를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뛰어난 강도를 자랑하는데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은회색으로 변하는 속성을 지닌
목재니 방문할 사람은 눈여겨 보고 앉아볼 필요가 있겠다.  









위 사진은 현재 공사 중인 섹션2 구역의 모습으로 섹션 1이 끝나는 20가에 철망으로 가로 막혀 있다.





예전에 시골에서 보던 아주까리 열매와 닮았는데 아무래도 전혀 다른 식물인듯 하다.
나무나 풀들의 이름을 푯말로 만들어 두었다면 부모와 아이들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싶다.



역시 철도와 굄목를 없애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정원으로 활용한 모습 



위 사진은 The Standard 호텔 아래를 지나는 구간으로, 애초에 호텔이 하이라인을 허물지 않고 지어진 덕분에
저 건물 밑 부분에는 시원스런 그늘이 드리워지고, 그 공간에 아래 사진에서 보듯 운치있는 접이식 의자를 가져다
두어 간단하게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 유용하게끔 디자인 되었다.





Gansevoort 스트릿으로 향하는 하이라인의 남쪽 공원 풍경





하이라인의 공식 엠블램도 그렇지만 위의 사진에서 보듯, 공원 내 펜스 디자인 역시 철도의 모양에서 그 형태를
가져왔다. 공원 곳곳을 조심스레 살펴보다 보면 초기 계획 단계부터 하나의 중심적 컨셉 아래, 파생되어지는
것들이 통일성있게 어우러지도록 디자인되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가 있다.
이런 필요와 기능 위에 올라선 철학과 사고가 문화를 이루는 힘이 아닐까 싶다.



남쪽 하이라인이 끝나는 Gansevoort 스트릿 동쪽 풍경 



그 반대편으론 허드슨 강 너머로 멀리 뉴저지가 바라 보인다.





아내가 그저께 새로 구입한 블랙베리로 찍어준 사진인데 내 사진기 보다 나은 것 같다.
당연 실력차이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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