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발견2010. 3. 23. 06:41
며칠 전, 즐겨찾는 디자인 사이트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 한 장을 맞닥뜨렸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두 명의 남자가 한 가게의 프론트 데스크에 서있는 모습이었는데
별 다른 설명없이 몇 장의 사진만 나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사진에 담긴 Mast Brothers Chocolate 이라는 단어로 구글링을 하니 다행히 가게가 뉴욕에 위치해 있다.



뉴욕 브룩클린의 윌리엄스버그에 위치한 이 가게의 정확한 이름은 Mast Brothers Chocolate Factory로,
평일에는 홀세일만 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주말인 일요일에만 개방된다고 해서 부러 시간을 맞춰 그곳에 도착했다.
가게가 들어선 동네가 제법 황량한 공장지역이긴했지만 곳곳에 흥미로운 샵들이 꽤 즐비했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문을 활짝 열어두었는데 문 양옆으로 부대를 세워 고정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부대는 쵸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열매가 담긴 것으로, 가게 안에서도 십 여개의 부대를 더 볼 수 있었는데
주로 베네주엘라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물론 공정무역거래 상품이다.



아래 그릇에 담긴 것이 바로 카카오 열매다.
이미 로스트 된 것으로 손가락으로 비비면 땅콩처럼 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진한 쵸콜릿색의 속살이 보인다.
코에 대고 맡으면 쵸콜릿 본연의 향이 나는데 약간 시큼하면서 쌉싸름한 풍미가 함께 일어난다. 



가게는 크게 공정을 담당하는 조리실과 판매를 위한 디스플레이 영역으로 나뉘는데,
아무래도 홀세일을 하는 곳이다보니 프론트 데스크가 있는 곳은 문 입구에 굉장히 협소하게 자리하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맨 앞쪽에 보이는 것이 완성된 제품을 진열한 판매대이고 그 뒤로 한 점원이 가공이 끝난
쵸콜릿을 금박지에 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 쌓인 박스는 제품 출하를 위한 패키지이다.



판매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쵸콜릿들을 별도로 맛볼 수 있도록 시식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곳에서 만들어내는 쵸콜릿 중 제일 적은 카카오 함량이 72%이다보니, 처음 다크 쵸콜릿을 먹는 사람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쌉싸름한 맛과 향이 미각을 자극해 자칫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아내가 맛을 본 쵸콜릿은 카카오 함량이 86% 짜리였는데 자기는 도저히 못 먹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명확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카카오 함량은 32%, 56%, 72%, 86% 그리고 99%로 구분된다.
물론, 이 가게에서도 99% 제품을 만날 수 있는데 쵸콜릿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선뜻 맛보기가 꺼려지는 수치다.
최근 기사를 보니 우리의 고추장도 그 매운 성분인 펩사이신을 수치로 체계화시켜 세계화를 위한 발판을 만든다는데
쵸콜릿의 카카오 함량처럼 외국인들도 손쉽게 자신이 선호하는 매운맛을 기준으로 상품을 고르면 좋을 듯 하다.



이렇게 완성된 제품들은 아래 사진과 같이 진열대에 종류별로 가지런히 전시 판매가 되는데
이 가게의 패키지 디자인이 또한 제법 유명해서 관련 계통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종사자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소스로 자리매김했다. 혹시 국내 사이트에서 Mast Brothers Chocolate Factory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네이버 검색을 했었는데, 비록 이곳을 다녀간 방문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패키지 디자인과
관련해 이곳 쵸콜릿 포장지 사진들을 모아둔 블로그를 몇 개나마 찾아 볼 수 있었다.



가게 이름에서 짐작되듯이 Mast Brothers Chocolate Factory의 주인은 두 명의 Mast 형제다.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한지는 몇 년이 채 안 되었지만, 그 사이 쵸콜릿에 있어 최상의 맛이라는 평가와
함께 별 다섯 개의 점수를 따내었고, 지금은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과 까페에 자신들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더불어 이곳은 뉴욕에서는 유일하게 카카오 열매를 로스트 하는 것부터 제품의 포장까지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만
이루어내는 소위, 영혼을 담아내는 쵸콜릿 가게로 뉴요커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두 형제 중, 형인 Rick Mast는 원래 자신의 고향인 아이오와에서 뮤지션을 꿈꾸던 사람으로
진학을 앞두고 The Institute for Culinary Education를 선택함으로써 본격적인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시작했는데, 이미 재학시절부터 품고 있던 쵸콜릿에 대한
매력은 끝내 그로 하여금 일반적인 요리사의 길이 아닌, 쵸콜릿의 세계로 뛰어들게 만든다.

브룩클린에 있는 Jacques Torres라는 쵸콜릿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릭은 이곳에서 쵸콜릿의 모든 것을 배운 후,
이제는 자신만의 쵸콜릿을 만들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뉴욕에서 독립영화 제작 일을 하던 동생, Michael Mast에게
함께 쵸콜릿 제조, 판매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2001년 11월, 두 형제는 동생 마이클이 쓰던 브룩클린 그린포인트의 한 아파트에 Mast Brothers Chocolate이라는
가게를 설립하고 형은 쵸콜릿 제조를, 동생은 회계일을 담당하여 이후 몇 년간의 성공적인 사업을 발판으로 현재의
위치에 가게를 확장 이전해 브룩클린의 명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 시켰다.

아래 사진들은 Theselby.com에서 가져온 이미지들로 이 가게의 쵸콜릿 제작공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형인 Rick Mast가 카카오 원두를 선별한 후, 오븐에 넣어 카카오 열매를 로스트하는 모습


로스트 된 카카오 열매를 분쇄한 후, 고운 가루만을 걸러 반죽을 한다.


일련의 공정을 거쳐 카카오 원료가 틀 안에 구워져 1차적인 쵸콜릿의 원형을 갖춘다.


1차 가공 쵸콜릿을 여러 성분과 함께 녹여낸 후, 성형틀을 이용해 실제 쵸콜릿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


갓 만들어진 쵸콜릿 바는 최종 패키징 단계를 통해 상품으로 완성되어 진다.

Mast Brothers Chocolate Factory에서 판매되는 쵸콜릿 바의 가격은 개당 $7이며, 3개를 동시에 사면 $1이 할인된
$20에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홀세일이 아닌 개인에게 판매되는 가격으로, 서두에 말한바와 같이 일요일에
한해 매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으며 오직 현금만 받는다.



내가 구입한 쵸콜릿은 마다가스카르의 한 농장에서 수입한 카카오 열매로 만들어진 것으로,
72%의 카카오 함량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제조일자가 내가 방문한 날인 3월 21일로, 손글씨로 적혀있다.
재미있는 것은 제조일자를 Date of Birth로 표기해 마치 쵸콜릿에 생명을 불어 넣은듯 보인다.



속지는 화려하면서 얇은 금박지를 쓰는데 쵸콜릿의 홈이 드러나도록 정성스레 손으로 눌러놓았다.



쵸콜릿의 재질이나 강도는 아래 보는 바와 같이 크레파스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맛은 물론 약간 쌉싸름하지만 그 깊이와 향의 풍미는 시중의 어떤 쵸콜릿과도 다른 원시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뒤에 밀려오는 아련한 기억은 참 기분을 편안하고 좋게 만든다.




Mast Brothers Chocolate Factory의 주인 릭 마스트는 유기농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올가닉, 그것은 또 하나의 브랜드일 뿐입니다."

건강과 환경의 문제가 만연한 지금, 유기농은 필요를 넘어 시대적인 유행 아이콘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다소 거칠지만 최소한의 자연에 가까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선한 이들의 소망이 어느새 이익만을 좇는 대형
유통회사의 먹음직스런 먹이가 되어 슈퍼마켓 진열대에 보기 좋게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 참 의아하다.
이것은 내게 약과 마약을 함께 파는 약국을 너무나 쉽게 연상시킨다.

누구의 강요나 권유도 없이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태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브룩클린의 윌리엄스버그 지역이며
이곳에는 예의 Mast Brothers Chocolate Factory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가게들이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아래 사진이 Mast Brothers와 함께 자리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소규모 수공업 가게의 주인들이다.
뉴욕 타임즈는 이런 새로운 문화를 'Brooklyn’s New Culinary Movement'라는 이름으로 기사화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이런 가게들을 찾아가 하나 하나 소개해 보려 한다.



↓ 최근 Vimeo에 올라온 마스트 브라더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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