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즐거워!'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08.29 인우드, Fort Tryon Park 1
  2. 2010.08.25 리틀폰드 캠프그라운드
  3. 2010.03.17 데스밸리
  4. 2010.03.08 씬시티, 라스베가스 8
  5. 2009.09.08 월든 Walden 13
  6. 2009.08.28 아틀란타 ② : The Varsity
  7. 2009.08.10 아틀란타 ① : 쟈니 로켓의 스마일맨
  8. 2009.07.27 라인백 경비행장 2
  9. 2009.07.16 스크룬 리버
  10. 2009.06.05 롱아일랜드, 그린포트
여행은즐거워!2010. 8. 29. 15:41

연일 이어지던 비가 그치니 날씨가 금새 가을을 닮아간다.
주말을 맞아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그릴과 바베큐 재료를 싸들고 Inwood Hill 공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인근 Fort Tryon 공원에 들러 산책 겸 데이트 겸 아내와 모처럼 시간을 보냈다. 



포트 트라이언 공원은 Fort라는 이름에서 짐작되듯이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요새로 쓰였던 곳이다.
지리적으로는 맨하튼 맨 북쪽의 폭이 좁은 인우드 지역에 위치해있으며 할램의 바로 윗 동네인 셈이다.
아무래도 요새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높은 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이 공원에 올라 서쪽을 보면 허드슨 강 위로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George Washington Bridge를 볼 수 있다. 



뉴욕을 가르는 허드슨 강 주변으로 여러 요새들이 들어선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대개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 해군의 침입에 대비해 지어진 것들로, 아래 사진 하단에 보이는 난간 역시
새롭게 복원된 옛 요새의 전망대 부분이다. 



포트 트라이언 공원은 애초 생각했던 것 보다 꽤 넓은 지역에 여러 산책길들이 울창한 숲 사이에 자리했으며
공원 곳곳에 Quiet 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는데 그래선지 자동차 소리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차분한 느낌이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센트럴 파크와 비교하니 이건 마치 수도원에라도 들어선 듯 하다.



참고로, 공원을 설계한 Frederick Law Olmsted Jr.는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Frederick Law Olmsted의 아들로
1935년에 포트 트라이언 공원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대부호 록펠러다.
록펠러와 관련된 이야기는 뒤이어 하기로 하고..



공원을 들어서면 초입 왼편에 잘 가꾸어진 계단식 가든이 보이는데, Heather Garden이라는 이름의 이 정원은
공원 설계 단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있는 공원의 터줏대감으로 다양한 식물군과 예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여자 이름으로도 붙여지는 헤더 Heather 라는 명칭은 야생화의 한 종류로 아래 사진 하단에 보이는 흰색 꽃이다.
멀리서 보면 오른편에 보이는 허브처럼 줄기 식물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 흰 부분이 모두 별사탕처럼
작고 동글한 꽃들로 송이를 이루는 모습이다.




헤더 정원의 주인공 Heather


수령초의 한 종류인 Cape Fuchsia


가느다란 실이 뭉쳐진 모양의 Floss Flower


일본 자생의 아네모네, Japanese Anemone


오랜동안 꽃의 색이 변하지 않는 Globe Amaranth, 말려서 장식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대천사장이라는 뜻의 Archangel, 우리나라에서는 참당귀라 불리며 보통 약재로 쓰인다.


꽃잔디 혹은 지면패랭이꽃이라 불리는 Phlox


내겐, 영화 '블랙 달리아'로 기억되는 Dahlia


말린 쥐포 크기의 이 식물은 그 잎이 온통 부드러운 털로 뒤덮여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꽃은 태어나 처음 본 것인데 여러 잎들이 정확히 원을 이루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그 크기가 엄청나서 왠만한 아이들 얼굴보다도 더 큰 듯 보였다. 

이 외에도 식물원에나 가야 볼 법한 여러 품종의 꽃과 식물들을 비롯해 라벤더, 라임 그리고 각종 허브들이
지천으로 자라는 모습을 보니, 한 일주일만 내 정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뜯어먹게.



가든에서 이어지는 길목은 예전에 만든 요새의 성벽들을 따라 걷게 되어 있었는데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그 돌을 연마해 둔 솜씨가 마치 칼로 두부를 잘라 올린듯 반듯하며 빈틈이 없다.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암석에서 한창 연습에 매진 중인 암벽등반가 아저씨



포트 트라이언 공원에는 이곳을 대표하는 두 개의 건물이 있다.
그 하나는 현재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는 New Leaf 라는 상호의 건물로, 원래 Frederick L. Olmsted Jr.가
공원을 설계할 당시 사무실과 까페테리어의 용도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인데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서 황폐화
된 이곳을 1995년, 영화배우인 배트 미들러 아주머니가 지인들과 뜻을 뭉쳐 이곳을 식당으로 재건시킨 것이다.
이 레스토랑의 운영을 위해 별도의 재단을 만들었으며, 레스토랑의 수익의 많은 부분을 다시금 기부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재료로 만드는 멋진 식사를 숲에 둘러싸여 먹는 낭만적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www.newleafrestaurant.com

이은 또 하나의 대표적 건물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분관이라 불리는 The Cloisters Museum 이다.
수도원이라는 이름의 클로이스터 뮤지엄은 중세시대의 역사적 자료들만을 보관, 전시하는 중세유물 박물관으로,
맨하튼 81가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직접 운영하는 부속 박물관인 셈이다.
아래 사진에 등장하는 건물이 이 박물관의 남쪽 모습이다.



이 박물관을 가득채운 대부분의 유물들은 원래 조각가이자 중세유물 수집가인 George G. Barnard의 소유물로
이것을 대부호 록펠러가 모두 사들인 후, 포트 트라이언 공원 북부의 토지를 구입, 그 대지에 지금의 박물관을
짓고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수집품들과 함께 모든 것을 뉴욕 시에 기부했고, 이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이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흠.. MoMA의 작품들부터 링컨센터까지 록펠러 가문은 뉴욕을 완전히 소유한 듯 보인다. 

박물관이 담고 있는 유물들의 성격을 반영하려는 의도인지 이 건물은 중세시대의 종교건축적인 요소를 차용해
설계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박물관 내부에 들어가보면 마치 유서깊은 수도원에 온듯한 착각이 든다.
클로이스터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건물 내부 뿐 아니라 주변 도로 역시, 틀에 찍어내거나 구워낸 벽돌이 아닌 일일히 깍은 돌을 빼곡히 박아 넣어
나선형 도로로 바닥을 마감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그 진정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듯 하다. 



동쪽에서 올려다 본 박물관의 모습인데,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나 나올 법한 수도원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위치가 맨하튼인 만큼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해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데
위 사진의 M4 버스 정류장이 박물관 입구를 마주보고 있으며, 지하철로는 A라인 Dyckman Street가 가깝고
이전 정거장인 190th Street에 내리면 포트 트라이언 공원의 입구부터 걸어서 들어올 수 있다.


Linden Terrace에 설치된 대형 성조기


Linden Terrace에서 바라본 브롱스 전경


Cloisters Lawn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원한 허드슨 강과 강 건너 뉴저지


Linden Terrace 밑을 관통하는 아치형 터널







선선한 가을 날, 담요 한 장에 가볍게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데이트 하기에 정말 좋은 곳인듯 하다.
적어도 도시의 번잡스러움과 소음을 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Designed by 안다
여행은즐거워!2010. 8. 25. 06:03
지난 주엔 진행 중인 작업도 정리하고 스트레스도 풀겸 홀로 캠핑을 다녀왔다.
머물다 온 곳은 Little Pond 라는 호수를 중심으로 들어선 리틀폰드 캠핑장으로, 뉴욕의 대표적 산악지역인
Catskill에 위치해있으며 맨하튼에서는 북서쪽으로 차를 달려 2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하게된다.

되도록 조용한 곳을 원했기때문에 좀 더 동쪽에 있는 Devil's Tombstone 캠핑장을 점찍어 두었지만
그곳이 올 한해 동안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캣츠킬 지역의 8개 국립 캠핑장 중 그나마 비교적 캠프 사이트 수가
적은 이곳을 찾은 것으로, 환경이나 경관, 편의시설 등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하다.

단 한가지 불편한게 있다면, 이곳은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캠핑 사이트에서 안테나 시그널이 잡히지 않길래 공원 직원에게 물으니 9마일(14Km)이나 나가야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도시 촌놈이라 놀리는 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차를 몰고 9마일을 나가야 통화가 되었다. OMG! 





리틀폰드는 사방이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호수로, 산을 타고 내려온 빗물과 지하수로 형태가 유지된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다 본 위 사진과 같이 그 모양새가 하트 모양이라 신기하다.
이거 Little Heart Pond라고 불러도 좋을거 같은데.



지리적으로 설리반 카운티에 속한 리틀폰드는 캠프장 인근에 상점이나 편의점같은 시설이 없다.
그래서 13마일 정도 거리의 Livingston Manor라는 마을에서 미리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해 들어오는 게 낫다.
이 마을 초입에서 Peck's Market이라는 상점을 찾을 수 있는데 시골 마을 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에 빵집까지
갖춘 곳으로, 아무래도 동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보니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계산대 앞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서로의 근황을 묻곤한다.





그렇게 다시 차를 몰아 Beaverkill 로드를 달리는데 느닷없이 비포장 도로가 눈 앞에 펼쳐진다.
미국에 온 이후로 지도에 표시된 도로 중 포장이 안된 도로를 달린 게 처음이라 무척 생소하다.



비포장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리틀폰드 캠프그라운드'의 입간판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전날 전화를 통해 직접 가서 둘러본 후 캠핑할 사이트를 정하면 안되겠냐고 요청했던 터라
차를 가지고 모든 사이트를 전부 둘러본 후 마음에 드는 51번 사이트를 내가 묶을 장소로 선정했다.
이곳의 비용은 1박에 $22이며 불을 지필 수 있는 장작은 $7에 판매하고있다.



막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지으려 주섬주섬 캠핑용품들을 피크닉 테이블 위에 꺼내고 있는데
바로 옆 죽은 고목 위에 딱다구리 Woodpecker 한 마리가 날아와 연신 나무를 쪼으며 벌레를 잡아먹고 있다.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던터라 하던 일을 멈추고 내내 딱다구리 삼매경에 빠졌버렸다.
만화에서 보면 높다란 빨강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짐작컨데 이렇게 민머리인 것은 암컷인듯 싶다.



이번 캠핑에서 딱다구리 말고도 호반새와 벌새도 두 눈으로 직접 봤다.
호반새는 트래킹 도중 발견한 저수지의 바위 위에 앉아있었는데 그곳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듯 보였다.
헌데 얼마나 경계심이 강한지 내가 몸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Ruddy Kingfisher라는 이름처럼 붉은 색이 화려하게 도드라져 보이던 호반새였다.

벌새는 이틀째 되던 날 저녁식사 중에 내 캠프 사이트 나무들을 옮겨다니고 있었는데
그 작은 사이즈 때문에 처음에는 나방이나 큰 곤충으로 착각을 하다가 나무 위에 앉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게 벌새임을 알게 되었다. 제 자리에서 비행을 할 때는 조금의 미동도 없는 것이 날때는 전광석화와 같았다.
중남미 대륙에 주로 서생한다고 알고있는데 이렇게 북미까지 올라와 사는지 미처 몰랐다. 미친 것인가..   



아직 무더운 여름 끝물임에도 불구하고 산 속의 밤은 제법 쌀쌀한 편이었다.
달랑 침낭 두 개만 가지고 잠을 자는데 그 추위에 몇 번이나 깼던 것 같다.
추위말고도 또 다시 나를 깨운 것은 인근을 지나던 늑대 떼였는데, 그 고요한 밤에 어찌나 소름끼치게 울던지
언제라도 내 텐트를 덮칠 것만 같은 공포감에 깊은 잠을 못 이루고 겨우겨우 아침을 맞이했다.
어릴적 시골집에 놀러 갔다가 들어 본 이후 처음인데 안 들어본 사람은 그 공포감을 모른다.

아침식사로 펙스 마켓에서 구입한 빵과 우유를 먹고 캠프장 산책을 나섰는데
이곳 야영객 대부분이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었고 그나마 호수를 중심으로 한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면 왼쪽 끝에 호수를 따라 자리한 곳들이 이곳의 명당격인 68번부터 75번 사이트인데
이 명당에 머물기 위해서는 차를 먼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짐을 가지러 다녀야하니 조금 불편함을 감수해야한다.











작은 비치도 마련되어 있는데 어른들이 들어가기엔 대단히 쑥스러울만큼 얕기때문에 아이들만 놀게 된다.
물론 아무리 깊지 않더라도 라이프 가드가 있는 시간에만 수영이 허락된다.







저녁 무렵, 천둥치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더니 샤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퍼붓는 비에 오도가도 못한채 바베큐 에어리어에 묶여있기를 이 십 여분,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날씨는 금새 청명하게 변해버렸다.
덕분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산안개 혹은 산김을 실컷 구경했다.





다음 날은 이곳 캠핑장과 연결된 트레일을 따라 트래킹을 해보기로 했다.
이곳에서 접근 가능한 두 개의 트레일 중, 2.9마일 길이의 Touch-Me-Not 트레일이 오늘의 목표 행선지로
리틀폰드 캠핑장 주위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헌데 트레일 초입에 왠 붉은 함이 하나 서있고 그곳에 Please Register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말이 Please지 이런 색상 조합이면 이건 청유형이 아니라 완전 경고형으로 다가온다.



대체 뭐가 들었나 열어보았더니 트레일을 나섰던 사람들의 인적사항과 출발일을 적는 기록지가 놓여있다.
얼마나 다니는 사람이 없는지 지난 5일간 6팀만이 이곳을 거쳐갔고, 그나마 오늘 출발한 사람 둘은 출발시간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Check Out 란에 표시가 되질 않았다.



이쯤에서 덜컥 겁이 났다.
미국 캠프장에서야 늘 듣는 주의사항이지만 나는 단 한번도 곰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와 본적이 없던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산 속에 혼자 들어간다면 곰은 귀신x귀신x귀신x귀신 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이런 곰에 대한 공포는 전적으로 빌 브라이슨 아저씨가 쓴 '나를 부르는 숲'이란 책때문이다.
미국 동부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애팔레치아 산맥 트레일에 관한 여행서인데 어찌나 겁을 주던지 말이다.

실제 내가 곰을 맞닥뜨린 건 단 한번이다. 다행히 나는 자동차 안에 있었고 곰은 자동차 밖에 있었다.
또 한번은 캐나다의 한 캠핑장에서 한 밤 중에 사람들이 냄비를 두들기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다음 날 아침, 어제 밤에 나타난 곰을 쫓으려 사람들이 그 난리를 부렸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ㅎㄷㄷ
암튼, 곰은 곰이고 나는 트래킹을 해야하겠기에 인적사항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출발한지 십분도 안돼 자칫 곰 때문에 산행을 포기할 뻔 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예상 외로 산길이 무척이나 버라이어티했기 때문이다. 오르막이 계속되는 초입을 지나니 빽빽한 소나무 숲이
나왔고, 그곳에서 좀 더 오르니 하늘 높이 솟은 메타세콰이어 숲이 시원스럽게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경계심 더럽게 강한 호반새가 머물던 산 중 저수지







또 다시 오솔길을 지나 몇 번의 언덕을 오르고 내리니 느닷없이 확 트인 들판이 펼쳐진다.
산 중턱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은 지대에 야생화들이 가득 들어찬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저 소나무 숲에서 마리아가 일곱 명의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뛰쳐나와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그런.







하지만 어울리기로 치면 곰역시 마리아에 뒤지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또 다시 불안해졌다.
혹여 이 들판에서 꿀통이라도 발견한 곰이 내가 그것을 뺏을거라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에스키모인들은 북극곰이 덮칠 때 용기를 내어 곰의 코를 있는 힘껏 주먹으로 쳐서 위기를 모면한다던데
나도 그러면 될까? 혹시 북극곰만 아파하는 거면 어쩌지.. 

정말 한심하게도 산행 내내 한 생각의 70% 이상이 곰 생각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남은 여정 동안 다행히 곰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곰 일은 모르는 법이다.
어디에 숨어 내가 방심하기를 기다렸을지도..



암튼, 산행을 끝으로 나의 짧은 혼자만의 캠핑도 끝이 났다.
올 가을엔 단풍구경 삼아 바베큐도 해 먹을겸 피크닉으로 하루 다녀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Designed by 안다
여행은즐거워!2010. 3. 17. 02:23
골드 러쉬가 한창이던 1849년, William Lewis Manly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John Haney Rogers라는 사람을
만나 이내 친구가 되어 함께 길을 나서게 된다. 얼마 후 그 둘은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Manly가 오래 전 위스콘신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Asahel Bennett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Bennett 역시 가족과 함께 한 무리의 역마차 행렬에 끼어 서부로 향하던 길로, 그들의 리더가 캘리포니아까지
가는 짧은 지름길을 알고 있다고 Manly에게 귀띔해 준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부터 캘리포니아까지는 약 700마일(1126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로, 도로가 발달한 지금이야
10시간만 차로 달리면 도달할 수 있지만, 황무지에 다름없던 그 시절에 마차로 가기에는 상상 이상으로 험난하며
고난한 여정이었음에 틀림없다. 시간을 단축하는 지름길이 있다는 얘기는 곧 Manly와 Rogers를 매료시키고
두 사람은 이내 별 고민없이 그 역마차 행렬에 함께 동참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솔트레이크 시티를 출발한 역마차 행렬은 그해 10월, 물과 식량의 부족으로 인한 내부분열로 여러 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되는데, Manly와 Rogers는 Bennett 가족, 그리고 행렬 도중 알게된
Jean Baptiste Arcan 가족과 함께 한 무리를 이루어 계속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두 달 후인 12월, 그들은 지금의 Death Valley 사막 한 복판에 들어서게 되는데 예상보다 길어진 횡단에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설상가상으로 식량 부족의 위기에 까지 내몰리게 된다. 결국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Manly와
Rogers가 인근의 마을을 찾아 떠나기로 하고 Bennett과 Arcan 두 가정은 그곳에서 이 둘을 기다리기로 한다.
하지만 인근에는 어떤 마을도 없었고, 결국 250마일(400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은 후에야 Manly와 Rogers는
Rancho San Francisquito라는 작은 마을에 당도하게 된다. 서울의 양재를 출발해 부산에 도착할 거리인 셈이다.

Manly와 Rogers가 다시 Bennett과 Arcan 두 가정이 기다리고 있는 Death Valley까지 다시 돌아가는 데에는
20일, 약 3주가 걸렸고, 다행스럽게도 이들 모두 아직까지 남은 물과 식량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역마차와 대부분의 짐들을 이곳에 버리고 Manly와 Rogers가 횡단한 250마일을 가로질러
죽음의 사막인 Death Valley를 빠져나오게 된다.

이 이야기는 45년 후인 1894년, William Lewis Manly가 본인의 여행을 기술한 Death Valley in 49라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 이후부터 이곳의 지명이 Death Valley로 불려지게되었다.


맨 왼편의 인물이 이 책을 썼던 William Lewis Manly이며, 차례로 Asahel Bennett과 Jean Baptiste Arcan이다.

데스밸리에 가기 전, 처음 접한 Manly 일행의 이야기는 위와는 다르게 모든 사람들이 데스밸리에서 죽고
Manly와 Rogers만이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는 비극적인 내용이었는데, 아마 데스밸리의 황폐한 모습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고자 했던 허풍쟁이들의 드라마였던가 보다.
공식적으로 지금까지 데스밸리에서 죽은 사람은 1850년대 골드러쉬 기간에 발생한 단 한명뿐이었는데 그나마도
기력이 쇠한 노인이었다고 한다. 결국 죽음의 계곡보다는 죽을만큼 빠져나오기 힘든 계곡 정도로 보면 되겠다.


라스베가스에서는 US-95 도로를 따라 3시간 정도를 달리면 데스밸리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주행 중에 끝없이 펼쳐진 황량하고 거친 황무지들을 지나치게 되는데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자란 내게
무척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었고, 간혹 사막 식물인 조슈아 나무 군락만 눈에 띌 뿐, 말그대로 생명체
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불모의 땅이 대부분이었다.



데스밸리는 그 길이가 우리나라의 휴전선과 비슷한 155마일(220킬로미터)에 이르고 그 폭이 좁게는 6킬로미터
에서 25킬로미터까지 남에서 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형태이며, 네바다주가 그렇듯 이곳 역시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바다에 잠겨있던 곳으로, 위 사진의 산등성이에 보이는 하얀부분처럼 여기저기서 소금을 볼 수있다.
평균기온은 한 여름인 7월의 경우 43도에 달하며, 문서 상 최고기온은 1913년 7월 10일에 기록된 56.7도인데 
이것은 1922년 리비아에서 측정된 지구 최고온도인 57.7도에 이은 역사상 두 번째의 기록이다.
쉽게 말해, 남미를 포함한 서반구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평균기온이 40도를 상회하는 6월부터 9월을 제외한 봄과 가을, 겨울이 주요 관광시기가 된다.

데스밸리는 그 접근할 수 있는 도로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도로가 포장되어 일반차량도 접근이
용이한 동쪽과 북쪽을 정점으로 남으로 이어져 내려가는 비포장 도로가 자리한 서쪽이 바로 그것이다.
접근이 용이한 동쪽의 주요 관광지는 아래 사진과 같다.


골드러쉬 당시, 제련을 위한 숯을 생산했던 가마터인 Charcoal Kilns 유적지와 Golden Canyon


형형색색의 Zabriskie Point와 Artists Palette


소금으로 만들어진 Bad Water 지역과 악마들이나 티오프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의 Devils Golf Course


물이 있지만 짜서 마시지 못하는 Salt Creek의 호수와 Devil's Corn Field


Mosaic Canyon과 사구지역인 Sand Dunes


웅장한 협곡이 들어선 Titus Canyon과 데스밸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Dante's View


데스밸리 서쪽은 오프로드용 타이어가 장착된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도로가 거칠다.
이를 어기고 들어가는 일반차량은 대부분 날카로운 자갈에 타이어가 찢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공원관리공단에서 사고차량을 견인하게 되면 그 운임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치뤄야 한다.
이런 악조건에도 매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데 바로 천연의 기이한 풍경들이 이곳 서쪽에 많기 때문이다.


화산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분화구 Ubehebe Crater와 움직이는 돌로 유명한 Racetrack Playa
레이스트랙 프라야의 '움직이는 돌'은 가장 나를 매료시킨 데스밸리의 명소로,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돌이
스스로 바닥에 자국을 남기며 이동하는 신비의 장소다. 강한 바람에 의한 작용이라는 설과 밤사이 얼어버린 물들이
녹으면서 움직인다는 가설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된 바가 없다고 한다.
저 지역에서는 저런 돌들이 수 백개 이상 동서남북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국을 남기며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너무 느리게 이동하기때문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거나 그것을 카메라에 담은 바가 여지껏 없다.



데스밸리를 벗어난 서쪽에 자리한 Dawn-Alabama Hills와 레이스트랙 근처에 자리한 조슈아 트리 군락지 


데스밸리 북단에 위치한 사구지역 Eureka Dunes


단테스 뷰와 반대 방향에서 데스밸리를 조망할 수 있는 Father Crowley Point


영화 혹성탈출의 촬영지로 유명한 Trona Pinnacles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데스밸리를 찾았던 지난 2월 12일은 곳곳이 진입통제가 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주로 겨울에 비가 오기때문에 이 즈음 강수량이 높은 편인데, 며칠 전 내린 비로 서쪽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포장된 도로가 발달된 동쪽의 명소들 마저도 대부분 진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직접 통제를 하는 것이 아닌만큼 이를 무시하고 서쪽지역으로 캠핑장비를 싣고 이동하는 차량들도
있었지만,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인간임을 감안한다면 이런 말은 꼭 듣는 편이 좋다.

암튼, 그 중 몇 곳을 다니며 감탄사를 남발하며 기념사진을 찍곤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넓어 차로 이동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지루하게 할애해야만 했다. 산이나 계곡이 있는 곳과 달리 완벽한 평야지대다보니 달리고 달려도
같은 풍경이 유지되는 것이 여간 질리는 게 아니다.



데스밸리의 경우, 공원 입장에 대한 요금은 별도로 없다.
차를 가지고 드라이브하면서 구경할거라면 마음대로 다녀도 상관없지만, 만약 사진을 찍기위해 아니면 걸어다니기
위해 차를 세운다면 반드시 주차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이 티켓은 공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인 티켓 판매기를
통해 구입할 수 있는데 차종에 관계없이 $20이며, 발행일로부터 일주일 간 사용할 수 있다.
-> 아래 정정글 참조

* 입장료에 대한 정정글
혹시나 해서 살펴보았더니 데스밸리 공원에 대한 입장료가 명시되어 있다.
매표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 언급된 티켓 판매기를 통해 비상업차량(Non-Commercial Vehicle)은 차량 당
$20불의 7일간 공원을 원하는대로 드나들 수 있는 티켓을 반드시 구입해야만 하며, 오토바이나 자전거 혹은 도보로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개인별로 $10 짜리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고 공식 사이트에 명시되어 있다.
일년짜리 티켓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데 가격은 $40이다.

숙박 시설은 공원초입에 각각 Furnace Creek Inn과 Furnace Creek Ranch가 있으며, 이중 Furnace Creek Inn은
야외풀장을 비롯 인근에 골프장 등의 편의시설까지 갖춘, 1박에 $300불 이상을 지불해야하는 숙박시설이다.
Furnace Creek Ranch는 1박에 $200 이내에 묶을 수 있는 곳으로 공원안내소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지역만이 데스밸리에서 유일하게 잔디가 자라는 곳인 걸 보면 아마 지하수를 퍼 올려 쓰는 것 같다.



데스밸리는 그 기이한 풍경만큼이나 많은 영화에서 배경으로 등장했는데 그 중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위와 아래에 보이는 사진이 Sand Dunes라는 곳으로 C3PO와 R2D2를 태운 분리선이 함선에서
빠져나와 이곳 사막에 불시착하는데 그때 C3PO와 R2D2가 루크 스카이워크를 찾아 헤매던 사막이 바로 이곳이다.
이외에도 사막 족속이나 Return of the Jedi에 등장하는 자바 더 헛의 성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 자체가 라스베가스가 중심이 된만큼 데스밸리에서 만족할만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언젠가 미국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이곳을 찾을 때에는 반드시 4륜구동 차량을 가지고 이곳을 횡단하면서
하늘을 이불 삼아 야외 캠핑도 하고 구석구석 온 몸으로 느끼리라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짐 또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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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즐거워!2010. 3. 8. 19:49
지난 달 중순 무렵, 일주일 일정으로 라스베가스를 다녀왔다.
매년 이 맘 때면 길고 긴 뉴욕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올해는 황량하고 거친 사막 위에 인간의 힘만으로 일구어낸 화려한 도시, 라스베가스를 찾은 것이다.   

사실, 4년 전 LA 여행 때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출발을 앞두고 일으킨 아내의 갑작스런 복통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LA 인근에만 머물다 돌아온 터라
이번에는 지난 여행에 대한 설욕전의 자세로, 서점에서 구입한 여행책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사전공부에 만전을
기했다. 더불어 서부에 온 김에 인근에 자리한 데스밸리 Death Valley와 그랜드 캐년 Grand Canyon에서도 각각
1박을 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세웠는데, 불확실한 숙박시설과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로가 자칫 여행을 고행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밀려 이 계획은 당일치기로 데스밸리에만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암튼, 우리가 탄 비행기는 뉴욕을 강타한 폭설을 잘도 피해 서부를 향해 날았다.



네바다 주의 겨울 기온은 대개 60℉~70℉(15℃~20℃) 사이라 한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라는데
저녁 7시 무렵 도착한 라스베가스 McCarran 공항은 비가 내려서인지 예상 외로 추웠다.
서둘러 예약한 랜트카를 몰고 나서니 번화가에 자리한 호텔까지는 채 15분이 안 걸렸다.

1930년 대, 후버댐 건설을 시발로 개발된 라스베가스이니만큼 도심 전체가 완성된 형태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심 속에서도 이곳 저곳 새롭게 짓고 허무는 건설 현장들을 심심치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빌딩이 최근 새롭게 개장한 'Aria 호텔'과 'Vdara 호텔'이 들어선 City Center 부지로
그 바로 옆에 분수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이 신구의 조화를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신구 모두를 경험하기 위해 우선 첫 호텔로 'Vdara'를 선택했는데, 콘도식으로 지어진 최신식 호텔이라
깨끗할 뿐 아니라, 사진에서 보이는 멋진 야경에 인터넷 서비스, 취사를 위한 도구까지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웠다.



마침 라스베가스에 머물던 기간이 음력으로 새해(구정)가 포함된 시기라 호텔마다 새해를 테마로 꾸며졌는데
위에 보이는 사진처럼 색색의 등을 달거나, 엄청난 크기의 백호랑이 상을 만들고, 혹은 동양풍의 장식과 소품들로
한껏 그 분위기를 살려 방문자 누구나가 신나는 축제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심어주고 있었다.

헌데, 그 이름을 굳이 'Chinese New Year'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적잖이 소외감이 인다.
예의 장식 역시 중국식 정원이나 중국 전통 복장의 대형 동상, 중국 한자로 치장된 휘장 등 온통 중국풍 일색이라
같은 음력설을 지내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의 다른 국가들의 존재감이 규모의 거대함 앞에 사라지는 것만 같다.

뉴욕같은 동부의 큰 도시에서는 음력설을 특정 나라의 행사로 부르는 것에 대한 다른 민족들의 반대의견을 존중,
공식적으로 'Chinese New Year'가 아닌 'Asian Lunar New Year'라고 오래 전부터 명명하고 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중국으로선 달갑지 않겠지만, '일본해'가 아닌 '동해'의 표기만큼이나 이런 명칭의 올바른
사용은 내 나라의 자존감을 살림과 동시에 편향되지 않는 역사관과 국가관을 서양인들에게 심어줄 수가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적인 노력 이외에도 우리의 설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하나의 축제로서 자리매김시키고 서양인들의 뇌리에 각인시켜야만 한다.



위의 사진은 라스베가스의 유명 호텔 중 하나인 'Venetian' 내 쇼핑몰이다.
사진 상에 드러난 부분은 극히 일부로, 뒤로 보이는 건물같은 최고급 상점들이 넓은 건물의 부지 안에 가득 들어차
있으며, 아래 보이는 수로역시 수 많은 곤돌라가 유유자적 떠다닐 수 있을만큼 충분한 길이로 건물 사이를 흐르고
있다. 높은 천정에는 구름이 펼쳐진 하늘까지 그려넣어 왠만한 시골 노인들이라면 이곳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분간하기 힘들만큼 그 규모와 비용 양면에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 베네티안 호텔을 짓는데 들어간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
위키피디아에서 내용을 살펴보니 공사가 시작된지 3년만인 1999년에 개장된 이 호텔은 그 면적이 11,000 제곱미터에
객실 수만 4,049개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건물로, 건립 비용에만 우리돈으로 1조 7천억이 들어 갔다고 한다.
물론 이런 큰 돈을 마련하려면 은행의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 정도 규모라면 그 하루 이자만 몇 십억원이 넘는
것이 정상이다.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호텔 운영이라면 융자금액의 전체상환에만 몇 십년도 넘게 걸릴 테지만
라스베가스의 모든 호텔들은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기때문에 불과 몇 년 내에 모든 것을 해결해 낸다.
얼마나 많은 돈들이 이 도시에서 쓰여지고 있는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위 사진은 두 번째로 묵었던 'Mandalay Bay Resort'인데 City Center의 호텔들 보다는 비교적 오래 전인
1990년대 후반에 지어진 건물로 역시 그 규모로 따지면 여느 호텔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호텔 부지에 여러 개의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겨울 시즌이라 따뜻한 온수를 채운 곳
하나만을 개장하고 있었다. 물론, 인공파도가 몰아치는 대형풀과 기타 다른 풀역시 이용하는 사람만 없을 뿐이지
24시간 물을 틀어 가동하고 있으며 조명 또한 밤 새 켜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 한방울이 귀한 사막에서 이렇게 쓰여지는 물들을 바라보면 이곳이 과연 사막인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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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게 산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도박역시 즐기지 않는다.
술이야 태생적으로 몸이 받쳐주질 않아서이고, 도박은 일찍이 한글을 깨우치자 마자 할아버지께 민화투 사사를
받은 덕분인지 철이 듬과 동시에 모든 노름과 도박을 바람처럼 허황된 것으로 깨우친지 오래다.
그런 내가 라스베가스에 왔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넌센스일 수 있는데, 아마도 영화에서 보여지는 화려함이나
인간의 손으로 일구어낸 기적같은 말장난들이 적잖이 내 안에 신기루같은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왔던가 보다.



뉴욕의 생활 패턴때문인지 처음 며칠은 낮 시간 동안 맛있는 음식을 찾아 순례를 다니다 초저녁이면 갖가지
유명 쇼를 보는 것에 시간을 할애한 후, 밤이면 부리나케 호텔 방에 들어가 인터넷과 TV로 시간을 보내곤 하던 차,
토요일 밤, 용기를 내어 가장 번화한 라스베가스 스트립을 걷게 되었는데 거리에 술병을 들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휘청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니 뭔가 알 수 없는 원죄의식같은 것이 온 몸으로 펴져가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 미국의 모든 주에서 실내가 아닌 곳에서의 음주는 금지된다.
그 욕구를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종이 봉지에 술 병을 감싼채 홀짝 홀짝 구석에서 먹는 경우는 봤어도
라스베가스처럼 거리를 걸으며 술을 마시거나 카지노라도 그렇게 실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목도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흡사 이곳이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이나 고모라가 아닐까 쉽게 연상되었다.
금새라도 땅이 갈라지고 유황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해도 납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Sin City, Las Vegas

라스베가스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생산해 내는 것이 없는 도시다.
오로지 소비를 위해 설계되고 만들어진 도시로, 이곳에서 유통되는 모든 것들이 타주나 타국에서 만들어져
소비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곳으로 보내진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역시 더 큰 부를 꿈꾸며 이곳에 모이지만
이내 대부분 지닌 것 조차 모두 잃고 이곳을 떠나간다. 그런 그들이 열망하고 갈구하는 욕구는 대개 일차원적이고
원시적인 형태를 띄며 쉽게 배설되어 휘발성 물질처럼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이곳에서 사라진다.

라스베가스의 어느 상점에 걸린 티셔츠에서 재미난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변기 위에 앉아 볼 일을 보는 남자의 그림 아래로 아래와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He is the only one who knows what he is doing in Las V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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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즐거워!2009. 9. 8. 03:28

노동절 휴일을 맞아 주말 동안 보스턴에 다녀왔다.
지난 첫 방문은 시내 호텔에 머물며 관광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아내 친구의 기숙사 아파트에서 지내며 그 집 가족들과 함께 인근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직접 일구어 놓은 텃밭에
새 묘종을 심고 또 거기서 자란 야채와 채소를 따다 밥을 지어먹는 소박한 여행을 만끽하게 되었다.
그 수확물 중 일부는 가져가 먹으라며 친히 포장까지 해주었으니 호화 호텔 여행보다도 더욱 값지다고 하겠다.

일요일 아침, 친구 부부가 인근에 구경할만한 곳이 있다며 조심스레 '콩코드'와 '월든'이라는 지명을 얘기하는데
설마 내가 아는 '월든'을 말하는 것인가 싶어, '쏘로우가 살던 그 월든'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실, 아직 본인들도 가본 적이 없는데다 아내와 내가 관심이나 있을까 싶어 조심스레 제안을 해 본 것인데
내 반응이 예상치를 넘어 반기는 기색이라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짐을 챙겨 바로 집을 나섰다.

월든 Walden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의미있는 책 세 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봉인된 시간』과
윌리엄 골딩의『파리대왕』그리고 핸리 데이빗 쏘로우의『월든』을 꼽는다. 내 기억 속의 '월든'은 당장 읽기에
지루한 부분은 많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느껴지는 전체적인 진실함과 그 속에서 빛나는 작가의 보석같은
세계에 대한 사고, 철학, 인생관이 내 가슴을 후려치도록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월든 호수와 월든 숲이 이곳에 있었다니!!



하버드 대학이 있는 곳에서 월든 호수가 있는 콩코드까지는 차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 극히 짧은 거리로
MA-2번 도로인 Concord Turnpike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면 Walden Pond State Reservation을 만나게 된다.
아래 그림에서 우측 상하를 가르는 두 줄의 검은 줄이 MA-2번 도로이고 좌우를 가르는 검은 줄이 공원으로
진입하는 도로로 이곳에서 차량 당 $5.00을 지불하고 나면 하단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게 된다.



주차장에서부터 호수까지는 도보로 채 몇분이 걸리지 않으며, 이내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메인 비치를 만나게 된다.
비치는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 피서지로 변신을 하는데 월든 호수에서는 수영 이외에 낚시를 하거나
카누나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있으며 겨울에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를 탈 수도 있다.
물론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쏘로우의 자취를 따라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위 지도 상의 호수 가장자리에
표시된 점선이 바로 그 산책로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중간에 쏘로우가 살았던 오두막 터전을 만나볼 수도 있는데
호수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대략적인 시간은 약 1시간이다.





메인 비치를 출발해 고스톱 방향으로 호수를 돌기 시작하니 금새 사람들의 소음이 멀리 사라지더니
이내 산책로가 등장하는데 자연 보존을 위해서인지 양 옆으로 쇠막대를 이용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작은 팻말에 심장 마크를 그려넣고는 'Healthy Heart Trail'이라고 산책로 이름을 붙여 두었다.
위의 지도에 점섬으로 표시된 산책길 마디마다 하트 모양이 바로 이 길을 지칭한다.    



호수에는 한가로이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이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30미터에 달하며
호수를 둘러싼 월든 숲의 넓이는 총 2680 에이커로 자연 보존을 위해 이 중 462 에이커만을 개방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보존을 위한 노력은 이 외에도 동시 입장객 수를 1,000명으로 제한 한 것을 비롯해 관광객들이 가져온
물품의 쓰레기들을 다시 가져가도록 공원 내에 쓰레기통을 비치하지 않는 환경정책을 지키고 있었다.
미국 내 자연보호와 보존이라는 개념이 처음 정립된 공원인만큼 모든 것들에 쏘로우의 정신이 담긴듯 보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대부분의 산책로는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벅찰만큼 그 폭이 좁아, 반대편의 다른 행렬이
지나갈 때면 어깨가 닿지 않도록 걷는 내내 조심을 해야만했다. 물론 자전거나 유모차는 이곳에 가져올 수 없다.
그 덕에 호수를 둘러싼 자연은 최소한의 공간만을 인간들에게 내주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월든 숲 속을 걷는 동안 내 머리와 가슴은 쏘로우가 수 백번도 넘게 지나다녔을 길을 밟는다는 기쁨으로 가득찼다.
이 길을 걸으며 쏘로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서 누구를 떠올리곤 했을까? 저 아름드리
나무는 그때도 지나는 쏘로우를 내려다보며 이곳에 서있지 않았을까? 오만 생각들이 머릿 속을 오고갔다. 



헨리 데이빗 쏘로우 Henry David Thoreau

월든 호수가 자리한 메사추세츠 주의 작은 마을 콩코드는 그의 고향이자 평생을 머문 곳이다.
1817년 이곳에서 태어난 쏘로우는 아마추어 조류전문가인 형의 영향 아래 월든 숲을 휘저으며 유년시절을 보낸다.
하버드 대학에서 그리스 신학과 영시를 공부하던 무렵, 쏘로우는 인생의 영원한 동지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을 만나게 되는데, 에머슨의 자연과 인간의 정신적, 물리적 공생관계를 서술한 에세이 'Nature'는
쏘로우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이후 에머슨의 소개로 만난 Bronson Alcott, Ellery Channing, Margaret Fuller,
그리고『주홍글씨』의 작가인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 등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구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엄격한 청교도적 제도 아래,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종교개혁이나 여성운동
등의 반체제적인 활동을 했던 것이 그 이유로, 쏘로우 역시 노예제 반대같은 이슈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쏘로우의 최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월든 Walden』의 탄생은 두 명의 죽음과 연관된다.
그 한명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던 친형이고 다른 한명은 자신이 예뻐하던 에머슨의 큰 아들이었다.
몇 년간을 상실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그에게 친구인 에머슨은 자신이 소유한 월든 숲 속에 터전을 짓고
휴양 차 살아볼 것을 권유하는데 이를 받아들인 쏘로우는 이후 4개월 간 계획을 세우고 이곳에 오두막을 짓는다.
그리고 1845년 7월 4일 월든 호수에서의 역사적인 첫 생활이 시작된다.

월든 호수에서의 그의 삶은 약 2년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 기간 동안 쏘로우는 이곳에서 자연사와 농경법을 배우며 일기를 집필하고, 그의 형과의 여행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콩코드와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을 쓰기도 한다.
1847년 9월, 월든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문명세계로 복귀한 쏘로우는 이후 7년여간 그간의 기록과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1854년,『월든』을 출판하게 된다.

하지만『월든』은 이렇다할 반향도 없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쏘로우는 집안의 연필제조 사업과 더불어
산책과 연구, 집필 그리고 뉴잉글랜드 곳곳에 있는 문화회관에서 강의를 하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여하게 되는데 경제적인 폐해와 노예제에 대한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쏘로우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캐나다로 노예들을 탈출시키는 일에 관여하고, 납세를 거부한 일로 투옥되기도 한다.
이 때의 활동선상에서 작성한 에세이『시민 불복종 Civil Disobedience』은 사회적인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최소한의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는 구호와 함께 부정하고 부패한 권력의 요구에 맞서 싸우는 것을 시민의 정당한
권리라고 천명한 쏘로우의 이 기고문은 이후 시민운동의 정신이 되어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크나큰 영향을 불어넣게 된다. 그것은『시민 불복종』의 핵심이 바로 비폭력주의였기 때문이다.

1862년 5월 6일, 쏘로우는 마침내 결핵으로 생을 마감하고 고향인 콩코드의 슬리피 할로우 공동묘지에 잠들었지만
그의 정신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쉬며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가 바른 길을 가도록 영혼을 불어 넣는다.





월든 호수 산책길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강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십 개의 입구이다.
긴 울타리 중간에도 길을 내어 누구나 호수에 발을 담굴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이런 입구마다 누군가 벗어놓은
옷가지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굳이 수영복이 아니더라도 속옷을 입은채 호수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는데 잔잔한 호수에 몸을 뉘인채 한가로이 떠다니는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내년 여름에는 꼭 이곳에 다시 들러 수영도 하고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을 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산책길을 3분의 2만큼 걸으니 쏘로우가 2년 간 거주했던 오두막의 터전이 나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 입구에 세워진 푯말의 문구였다.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철저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핵심적인 부분들만을 대면하고 싶었고
 삶을 통해 배워야만 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없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며 내가 죽음에 임해서 나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구는『월든』에 나오는 구절로, 삶에 대한 그의 진지한 성찰의 자세를 쉽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책상 위에 올라서도록
하는데, 이때 키팅은 "쏘로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적으로 산다고 했다"고 말한다. 그 인용의 글의 서두가 바로
이 푯말에 적힌 문구이며 또한 이 본문은 내 삶에 있어 종교와 인간의 삶 중에 어느 곳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
판가름 하도록 방향을 일러준 쏘로우의 핵심적 가르침 중 하나이다.

더불어 영화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닐은 이 구절을 응용해 '죽은시인의 사회' 모임의 개연사를 낭독한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anted to live deliberatel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나는 철저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진지하게 그리고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살고 싶었다.




오두막 터전이라는 말 그대로 현재 이곳에 오두막은 없다.
다만 오두막 굴뚝의 주춧돌이 1945년 롤랜드 웰즈 로빈스라는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이곳에서 쏘로우가
살았던 것이 증명되어 위의 사진처럼 오두막 집의 크기만큼의 사이즈로 돌기둥이 설치되었다.





위의 반석이 바로 오두막 집의 굴뚝 주춧돌이다.
쏘로우가 실제 살았던 오두막은 2년 간의 생활을 정리한 1847년, 그 땅의 소유자였던 에머슨이 자신의 정원사에게
팔았고, 다시 2년 후 다른 두 명의 농부가 이 오두막을 사서 콩코드의 다른 지역으로 통째로 옮긴후 곡식 저장고로
사용하다 마침내 1868년 완전히 해체되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쏘로우가 세상을 뜬지 4년 만의 일이다.

그 오두막 집을『월든』에 묘사된 그대로 재현해 주차장이 있는 공원 초입에 만들어 두었다.
오두막은 그 크기가 무척 작아 어른 세 명이 들어 누우면 꽉 찰 정도이며, 실내에는 작은 간이 침대 하나와 집필을
하는 책상, 벽난로, 식탁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오두막 집 정면에는 명상에 잠긴듯한 쏘로우 동상이 서있다.



월든 호수를 둘러싼 숲은 년중 내내 개방되며 일출 이후부터 일몰 전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차량에 한해 적용되며 승차인원에 관계없이 자동차 한 대당 $5.00가 징수된다.

Walden Pond State Reservation
915 Walden Street, Concord, MA 01742
Tel: 978-369-3254



쏘로우의『월든』은 한창 예민했던 시기에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던 책이다.
책 사이사이 금과도 같던 구절들이 몇 번이나 줄이 쳐지고 읽히기를 반복되었던지.
그 중 한 구절은 아예 별도로 메모를 해서 늘 책 안에 지니고 다녔는데 꿈이 많던 시절에 참 큰 힘이 되었다.

젊은이는 목수나 농부나 선원이 되어도 좋으나,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짓만은 제발 삼가도록 하자.
항해하는 사람이나 도망치는 노예가 항상 북극성을 지켜보듯이
우리는 어떤 수학적인 점에 의해서만 방향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점은 평생 동안 우리의 길을 가리켜주기에 충분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일정한 시일 안에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올바른 진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헨리 데이빗 쏘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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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즐거워!2009. 8. 28. 10:59
아틀란타에서 유명한 것이 무어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The Varsity 였다.
아틀란타에 자리한 식당으로 총 600여 대의 주차 공간에 800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드라이브 인 식당인데, 설립 연도가 1928년이니 80년을 넘긴 장수식당인 셈이다.
차를 몰고 들어서니 마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것처럼 수 많은 차들이 쉴새없이 드나든다.



이곳의 주 메뉴는 햄버거와 핫도그인데 사실 어디나 그렇지만 기대가 크니 막상 맛은 대단치 않다.
재미있는 건, 주문을 받을 때 이곳 종업원들은 미국사람들 조차 알아먹기 힘든 발음을 쓴다.

"What'll ya have?"

뭘 주문하겠냐는 말인데, 이외에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주문 음식의 이름이 죄다 약자로 소통된다.
그러고보니 한국식당에서도 흔히 '뚝불'같은 약어로 주문을 받는 걸 보면 세상살이가 다 거기서 거긴가 보다.



역사가 오래된만큼 유명인사들의 방문도 많아 역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 조지 H 부시, 빌 클린턴이 다녀갔고
고인이 된 코미디언 닙시 러셀은 젊은 시절 이곳에서 일한 경험이 코미디를 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The Varsity가 낳은 가장 유명한 사람은 어비워커와 존 레일포드라는 두 명의 종업원인데
이들은 이곳에서 각각 55년과 50년 간 평생을 바쳐 일을 했고 작고한 이후에는 하나의 마스코트로 남았다. 



The Varsity 드라이브 인 식당의 이색적인 서비스는 주문한 음식을 차로 직접 배달해 준다는 것이다.
(대개 맥도널드같은 일반적인 드라이브 인 식당은 주문 후 해당 창구에 차를 대고 음식을 건네받는다.) 
이 배달을 담당하는 직원을 Car hop이라고 하는데 차가 들어오면 그곳에서 주문을 받고 주방에 가서 쟁반 위에
음식을 담아 내온다. 쟁반은 특수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자동차 유리 상단에 끼우는 받침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아래 사진의 오른쪽 차량을 보면 운전석 유리창 앞에 은색으로 빛나는 사각 쟁반이 바로 그것이다.



헌데 내가 보기에는 좁은 새장에 놓인 모이통을 연상시키는 거 같아 이런 서비스가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미국이 달리 비만 국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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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즐거워!2009. 8. 10. 12:12
조지아주의 아틀란타에서 4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어제 저녁 늦게 뉴욕으로 돌아왔다.
아틀란타에 대한 정보를 잔뜩 챙겨간 터라 나름 포부는 컸지만 도시 자체가 내 예상과 많이 달랐고 
연일 100도에 가까운 남부의 살인적인 더위 앞에서는 어떤 의욕도 맥을 추스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한낮이면 시원한 에어컨을 찾아 어딘가로 들어가야만 했는데 그런 곳 중 하나가 Johnny Rockets이다.

우리로 치면 지하상가 격인 Underground 라는 곳에 자리한 이 곳은 앞치마를 두른 언니가 껍을 질겅질겅 씹으며
주문을 받는 모습으로 각인된 전형적 미국 식당으로, 간판에 Original Hamburger 라고 새겨 넣은 것에 미루어
햄버거가 주메뉴인 거 같아 오리지널 햄버거와 감자 프라이즈를 각각 주문했는데, 곧이어 바람을 가르며 주방에서
내어온 프라이즈 위에 어! 센스 왕창의 스마일 맨이 케쳡 종지에서 나를 보며 웃고있다.



마치 "아틀란타에 잘 오셨어요!" 라고 말을 거는 듯해 금새 기분이 산뜻해졌다.
비록 대단한 건 아니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소소한 서비스가 도시의 이미지를 판가름 짓기도 한다.

맛은?
귀여운 스마일맨의 눈을 프라이즈 막대로 푹! 쑤신 것은 마음이 아팠지만 맛 하나는 최고였다.
햄버거도 햄버거지만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뜨겁고 바삭한 프라이즈를 먹는 것은 내게 있어 늘 삶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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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즐거워!2009. 7. 27. 05:59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미국 무비자 여행시대의 개막에 발맞춰 미주노선 승객 유치를 위해 대한항공이 내건 CF 슬로건이다.
배우 한효주가 등장해 미국 곳곳을 소개하는 이 시리즈 CF 중에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오르는
'뉴욕, 레인백' 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올 봄, 이 CF를 처음 접하고 경비행기를 타겠다는 결심을했는데
따뜻한 6월이나 되어야 비행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장장 3개월을 기다린 끝에 어제 드디어 이곳을 찾았다!  



이곳의 정확한 지명은 CF에서 소개한 레인백이 아닌 라인백 Rhinebeck 이라 불러야 올바른 표기이다.
뉴욕 Dutchess 카운티에 자리한 조그만 시골동네인 이곳에 라인백 경비행장 Old Rhinebeck Aerodrome
자리하고 있으며, 맨하튼을 출발해 이곳까지는 약 100마일, 차를 달려 2시간 조금 못미치는 거리이다.

주말에는 예약없이 신청하는 순서대로 비행기를 탄다는 얘기에 서두름이 없이 집을 나섰더니, 얼추 오후 1시를
조금 넘겨 라인백 경비행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걸어들어가니 매표소가 보이는데
딴에는 비행기를 타러 온 것이니 별도의 입장료를 내지 않을거라 생각했건만, 오늘 에어쇼가 있어 입장료 $20을
따로 내야한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값을 치루고 비행장 안으로 들어서니 각종 비행기가 초원 위에 늘어서 있다.





특이한 것은, 비행장에서 모여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1930년대 즈음의 고풍스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자리한 자동차들도 모두 클래식한 내음이 풀풀 풍기는 구형 차들 일색이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차츰 비행장을 둘러보면서 그 의미를 알게되었다.

이곳에 온 첫 번째 목적인 경비행기 탑승을 위해 들어서자 마자 티켓 부스를 찾았다.
아래 보이는 빨간 지붕의 오두막이 티켓 부스이고 그 뒤로 보이는 비행기가 우리가 탈 경비행기로,
티켓 가격은 1인당 $65이며 신용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다. 총 비행시간은 약 10분에서 15분 사이라고 한다.





비싼 가격때문인지 대기자들이 없어 다음 비행이 우리 순서가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고글과 모자를 쓰고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비행을 하기때문에
이 고글과 모자가 없으면 아예 눈을 뜨지도 못하고 폭탄맞은 머리 모양으로 지상에 내려오게 된다.
드디어 우리 순서가 되어 보조 요원들이 발판을 들고 비행기 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탑승할 비행기는 1929년에 제작된 New Standard D-25 모델로, 총 무게 1543Kg에 최대 200마력의 힘을
내뿜는 엔진을 갖추고 있으며, 최대속도176 킬로미터 그리고 최대고도 5486미터를 오른다고 한다.
이름에 New가 들어간 이유는 Old 버전을 개량하여 성능도 좋아지고, 탑승 인원도 조종사를 포함해 3명이던 것을
New 모델은 두 명을 더 늘려 총 5명이 탈 수 있다고 한다.
위에 뒤를 돌아보며 웃는 아저씨가 우리와 함께 탑승한 또 다른 승객인데, 착하게도 뷰가 더 좋은 뒷자리를
아내와 내게 양보했다. 나중에 명함을 줄테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결국 이 아저씨를 찾지 못했다.
그럴 확률은 없겠지만 우연이라도 이 곳에 들른다면 꼭 연락주시길...  



이륙이 생각 외로 상당히 부드러워 바퀴가 땅에서 떨어진 것을 모를 정도로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엔진 소음은 옆 사람 소리가 잘 안들릴 정도로 꽤 시끄러운 편이었지만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오른터라 그닥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고 다만, 비행기 바깥 쪽으로 얼굴을 내밀면 엔진에서 빠져나오는 더운 열기를 정면으로
맞게되기 때문에 비행기 아래를 내려다 보기가 어려웠다. 





썩 좋은 시계는 아니었지만 워낙 화창한 날씨라 가까운 풍경을 즐기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또한 지근거리의 상공에서 뒤뜰의 수영장부터 목장에 방사한 가축들까지 라인백 마을을 내려다 보게되니
그라운드 레벨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사물이 인식되는 것같아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의 큰 강이 뉴욕을 크게 북에서 남으로 가르는 허드슨 강으로, 지류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캐나다까지 도달하게 되며 강줄기가 흐르는 남으로 계속 따라 내려오면 맨하튼을 만나게 된다.
그 강위로 놓인 다리는 Kingston Rhinecliff Bridge로 이곳 라인백으로 오기 위해선 저 다리를 건너야한다.



이 분이 바로 비행를 담당하는 조종사이다. 헌데, 비행 중에 어떻게 조종사를 촬영할 수 있을까?
비행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 기종의 경우, 조종사가 맨 후미에 자리하게 되어 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내와 내 앞에 자리한 아저씨를 포함한 세 명의 승객이 조종사 앞에 타게 된다.





조종을 담당했던 이 분의 이름은 톰 베일리로 이미 현역에서 은퇴를 한 할아버지 파일럿이다.
하얀 긴 머플러를 날리며 조종을 하는데 아내가 감탄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잘 생기기도 했거니와 무척이나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주었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아내와 나를 다시 불러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다른 기종의
비행기에도 태워주었다.


비행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복고풍의 옷을 빼입은 여성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곳 직원이거나 아니면 무슨 단체 이벤트가 있나보다 했는데 방송을 통해 안내하는 것을 들어보니
곧있을 에어쇼를 앞두고 퍼레이드를 할 예정이니 참가할 사람들은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다.
이런 데서 빠지는 것을 바퀴벌레를 껴안은 쥐를 보는 것만큼 싫어하는 아내가 꼭 참가해야겠다고 사람들을 따라
간이 피팅룸으로 들어가더니 곧 이어 우아하시게도 등장하시었다.





퍼레이드 전에 작은 패션쇼가 열렸는데 한명씩 모델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포즈를 취하면 사회자가 모델이 입고
있는 옷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을 곁들이는 형식이었다.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퍼레이드에 참여한 대부분이
여성들이고 남성이라고는 하기 싫은걸 등 떠밀려 올라온 듯 뚱~한 표정의 남자 아이들 뿐이다.



패션쇼가 끝나자 본격적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는데 하나 둘 클래식한 차량 위에 올라탔다.
그냥 모양으로 전시해 놓은 줄 알았던 차들이 이곳에 쓰이기 위해 초원 위에 세워졌던가 보다.









뭐 퍼레이드라고 해봤자 차에 올라탄 채로 저 멀리 갔다가 돌아오면서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게 전부다.
하지만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참 값진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아내를 포함해서 말이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이어진 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은 에어쇼 차례였다.
처음 입구에서 걸어 들어올 때 보았던 수 많은 비행기들이 오늘 에어쇼에 참여할 거라고 한다.
그 중 몇대는 어디 박물관에나 가야 봄직한 구닥다리 모델들이라 선뜻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에어쇼를 진행하고 비행 중 각 기종에 대한 설명을 맡은 사회자는 높은 망루에 올라 서 있었다.
그곳에서 마이크를 들고 설명을 하는데 얼마나 이 곳에서 오래 일하셨는지 대본없이도 전혀 막힘이 없었다.



유머가 빠지지 않는 나라답게 익살스런 촌극 하나가 행사 중에 소개되었다.
지난 일주일 간, 심혈을 기울여 날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들었는데 오늘 이 비행기(?)를 선보인다고 한다.
몇 명이서 열심히 뒤를 밀어 달리던 자전거가 방향을 못잡고 숲으로 향하더니 이내 중심을 잃고 숲 저 너머에서
작은 폭발 소리와 함께 넘어지고 만다. 뒤이어 운전자가 비틀거리며 숲속을 나와 드러눕는식의 익살극이다. ^ ^

본격적인 에어쇼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오래돼 보이는 비행기 한 대가 등장한다.
기명이 Bleriot XI 라는 이 비행기는 1909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으니 올해로 정확히 100년이 된 셈이다.
이 비행기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행기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두 번째로 오래된 비행기라고 한다.
35마력의 엔진 파워로 최대 속도가 시속 75킬로미터라니 소형 오토바이보다도 느린 비행기다. 
비행은 살짝 지면 위를 나는 정도로만 진행되었는데, 그다지 실망치 않은 것이,
만약에 저게 하늘 높이 날게되면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다음에 등장한 아래 비행기는 Caudron G.III 라는 이름의 기종으로,
1914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실제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기도 했으며 주로 산악지형을 수색하는 것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기록 상 최대고도 3048미터를 오르며 80마력의 힘으로 시속 104킬로미터로 날 수 있다. 
물론 이 날은 아래 보이는 높이가 최대고도였다.



뒤이어 모습을 보인 비행기는 꼬리가 마치 물고기 지느러미를 연상시켰는데, 이 비행기의 이름은 처음 디자인을
했던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Hanriot라고 부르며, 위의 기종들과 마찬가지로 1910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35마력에 시속 80킬로미터로 날며 별도의 브레이크가 없어 날개를 이용해 착륙 시 속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에어쇼 중간에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또 다른 코미디극이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죄수로 보이는 탈주자 한명을 경찰차가 뒤쫓는다. 그리고 탈주범은 미리 대기하고있던 동료의 차량에 올라
한 참을 달아난 뒤, 출발을 앞둔 비행기 날개에 붙어 그대로 이륙해 버리고 만다. 졸지에 지붕쳐다보는 개 처지가
된 경찰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데, 어! 저 높은 상공에서 탈주범이 떨어진다!
물론, 떨어진 건 인형이고 그 사이 관객의 눈을 속여 탈주범이 다른 곳에 숨어있다가 시신을 차에 싵자 다시금
살아나 또 다시 경찰들하고 옥신각신 거리는 내용이다. 그래도 제법 내용이 길고 드라마틱해서인지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관람들을 했다.

이 후에도 쇼는 이어져 세 대의 비행기가 연이어 공중에서 묘기를 펼치곤 했다.
단지 비행만이 아니라 갖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신경을 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라인백 경비행장의 역사가 괜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불어, 이 경비행장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을 찬찬히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은퇴를 한 노인들이었다.
조종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현역 파일럿을 오래 전에 그만 둔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저 높은 창공 위를 가르는
사람이 이런 노인들일줄은 이들을 볼 때까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엔지니어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60세는 고사하고 50세 중반에 은퇴를 맞이하는 요즘의 상황과 견주어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중한 시간들과
활기찬 에너지들이 우리 주변에서 낭비되고 있는지 새삼 떠올리게 된다.
전기나 물만 아끼고 절약할 것이 아니라 이런 고급 노동력들도 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위에 보이는 사진 중 맨 오른쪽 할아버지가 CF에서 한효주에게 "Where are you going?"이라고 인상좋게 묻던
빌 킹이라는 할아버지 조종사다. 지금도 이곳에서 여전히 조종을 하고 계신다.

라인백 경비행장 반대편에는 비행기와 관련된 것들을 모은 박물관이 별도로 자리하고 있다.
총 4개의 대형 창고로 지어진 이 공간에는 비행기를 비롯해 엔진, 자동차 등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돈을 들여 구입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많은 전시물들은 기부를 통해 이곳에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그럼 누가 왜 이곳에 기부를 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이 비행장을 맨처음 설립하고 꿈을 이뤄나간 콜 팰런 Cole Palen 에게 있다.



2차대전 참전 후, 롱아일랜드에 있는 루즈벨트 항공교육학교에서 처음 비행교육을 받은 콜 팰런은 고전 비행기에
관심을 두고 재산을 털어 그곳 박물관에 있는 비행기 세 대를 구입하게 된다. 자신만의 비행장을 만들어 초창기
디자인된 비행기 모델들을 한 곳에 모으는 꿈을 가졌던 콜 팰런은 1959년, 라인백 지역의 한 농장지대를 구입하고
지금의 라인백 경비행장의 터전을 가꾸게 된다. 이후 수집을 벗어나 구형비행기의 부품과 엔진을 직접 만들고
개량하여 퇴물 비행기들을 다시금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해 다시 한번 새로운 비행 역사를 쓴다.
그는 지난 1993년 67세의 일기로 더 이상 이륙이 필요없는 곳으로 떠났지만 그의 오랜 노력과 열정을 기리고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지금도 기부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박물관 곳곳에서 콜 팰런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입구에서 구식복장을 한 사람들을 보며 품었던 의문이 쉽게 풀린다.
누구보다 오래된 비행기들을 사랑했고 단지 그것들을 물체가 아닌 인간의 날고자하는 오랜 염원의 결정체로서
그곳에 얽힌 수 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정신적인 부분까지 많은 사람들이 배워가길 바랬던 그였기에
작은 것 하나까지도 향수를 일으키는 역할을 부여했음이 아닐까.

Old Rhinebeck Aerodrome
http://www.oldrhinebeck.org/


Designed by 안다
여행은즐거워!2009. 7. 16. 12:33
지난 7월 3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이었다.
갑갑한 일상에 숨통 좀 틔우자는 생각에 자연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떠나자고 다짐을 했건만
정작 행선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어디로 갈지 갈팡질팡거린 바람에 일주일을 허무하게 보내버리고
결국 연휴 이틀 전에야 뉴욕주 북부에서 캠핑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캠핑 용품점에 가서 텐트 하나를 샀다.

캠핑을 염두에 둔만큼 당연히 자리가 있을거라 믿고 출발 당일까지 짐만 꾸렸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자동차에 모든 준비물을 챙겨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캠핑장에 전화를 했더니 빈자리가 없다고 한다. 아뿔사!
놀란 마음에 근처 다른 캠핑장에 연락을 취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연휴를 맞아 대거 휴가를 떠나기때문에 당일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거라고 한다.

결국 거진 포기하는 심정으로 한 군데 더 전화를 걸어 자리가 없다하면 그냥 드라이브나 다녀 오자고 아내와
합의를 한 뒤 연락을 했는데, 천만다행! 한 자리가 남았다고 한다! 뭐 재고할 것도 없이 그 길로 출발했다.



맨하튼에서 목적지인 Riverside Pines 캠핑장까지는 자동차로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220 마일이나 되는 꽤 먼 거리로, 87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히피족들의 역사적 장소인 우드스탁을 비롯해
뉴욕주의 주도인 알바니를 지나며 목적지에서 북쪽으로 몇 시간을 더 달리면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닿게된다.
캠핑을 할 목적지에는 스크룬 강 Schroon River 이 흐르고 있는데 카누를 타고 이 물길을 거슬러 오를 작정이다.

87번 도로의 25번 출구로 나와 이어진 8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5분 정도를 가니 드디어 캠핑장이다!!! 



1969년에 문을 연 Riverside Pines Campsites & Cabis는 작은 산 속에 지어졌다.
대개 이런 캠핑장에는 텐트를 위한 공간과 더불어 오두막 집인 캐빈도 있고 상설 트레일러 차량도 마련되어 있어
보다 편안한 잠자리나 편리한 취사를 원하는 사람은 그만한 비용을 더 지불하면 된다. 물론 개인이 트레일러를
가져와도 필요한 전기나 배수시설을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아래 보이는 사진의 건물이 이 캠핑장의 메인 오피스 건물로 야외 테라스와 더불어 실내에는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는 상점과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조그만 식당이 함께 붙어있다. 오락시설로는 말그대로 아이들 전용의
게임용 오락기계 몇 대와 어른들을 위한 노래방 기계가 있어 저녁이면 누구나 무료로 노래를 할 수 있다.

비용은 텐트의 경우 1박에 $22.00이고, 캐빈은 $375.00 ~ $425.00 사이, 그리고 트레일러의 경우에는 $350.00부터
$700.00까지 그 옵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오래 전에 미국 북부와 캐나다를 돌면서 보름 정도 텐트 야영을 했었기에 어려운 것은 없었다.
바닥을 고른 후 텐트를 치고 필요한 물품과 식품들을 꺼내어 저녁 지을 준비까지 한번에 마쳤다.



헌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자동차 안에서 필요한 것을 꺼낸 아내가 그만 자동차 키를 차에 둔채 문을 잠근 것이다.
별 수 없이 철사 옷걸이로 고리를 만들어 자동차 문짝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어디선가 구원투수를 불러왔다.
두 명의 남자 였는데 그 중 한명이 옷걸이를 능숙하게 작은 국자 모양으로 만들더니 쉽게 열어버렸다.

고마운 마음에 캠핑장 어느 곳에 머무는지 물어본 뒤 캔맥주 한 팩을 사서 건넸다.
아래 첫 번째 남자가 바로 자동차 문을 열어준 브랜든이라는 사람으로 현재 유니온에서 일을 하며 아내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모두가 형제 가족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매년
이곳에서 한 달 정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데 올해로 벌써 17년째라고 한다! 지겹지 않을까...

브랜든이 내 사진기를 보더니 전문 사진가냐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이메일로 보내주겠다 약속을 했다.
헌데, 건넨 받은 쪽지를 보니 이메일 말고도 자기네 집 주소까지 상세히 적어두었다. ^ ^



밤새 비가 내린 덕분에 아침이 제법 축축거렸다.
어제 저녁 태우다 남은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데 아침 기상과 함께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옆 텐트의 젊은 아해들은 땔감이 모자라는지 아예 손도끼를 들고 나무 위에 올라가 벌목을 한다.



이튿 날에는 예정대로 카누를 타고 스크룬 강을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캠핑장에서 카누를 빌려준다기에 대여점을 찾아 헤매는 수고없이 $20.00을 내고 하루 종일 쓰기로 했다. 
상류까지는 꽤 긴 거리라 아예 김밥과 과일 등 점심 거리를 아이스 박스에 담아 배에 실었다.



뉴욕 북부 지역에는 셀 수 없을만큼 많은 호수와 강이 있다.
그 중 이곳 스크룬 강을 찾은 것은 다른 강과 달리 물길이 구비져 있어서다.
경험 상, 카누를 저어 나갈 때 앞이 훤히 내다 보이는 것보다는 구비구비 돌아 새로운 풍경을 맞닥뜨리는 것이
시각적인 즐거움도 있고 더불어 체력적인 피로도 그만큼 적은 거 같다. 스크룬 강은 그런 점에서 제격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닿는 부분이지만, 이곳 강변들은 대부분이 개인 소유의 재산이다.
이곳 뿐만이 아니라 내가 다녀본 미국의 대부분 강이나 바다들은 그 앞에 자리한 집들의 사유지였다.
그래서 지정공원이나 공공지역이 아닌 다음에는 바다나 강으로 접근할 길이 없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섰다가는
집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해명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사유지로서 관리가 될테니 오염의 걱정도 덜 뿐더러 환경보존를 위한 국가의 세금도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제도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기본적 권리를 박탈당하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역시 예상대로 조금 물길을 차고 올라가니 숲과 어우러진 강의 풍경이 혼을 빼 놓을만큼 멋지다.
더우기 날씨가 흐림과 갬을 반복해 체온적으로도 지루함이 없어 더욱 즐겁다.







띄엄띄엄 강가에 자리잡은 집들을 만나곤 했는데, 아래 왼편 사진의 집 주인은 휘어진 나무 등걸에 계단으로 쓸
나무 발판을 설치해 시원하게 물로 다이빙을 하게끔 했다. 다이빙을 위한 외줄 그네와 더불어 당장이라도 해보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오른편 사진을 보면 강가인데도 불구하고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을 돌아다니다보면 인가가 전혀 없는 고속도로에도 이런 소화전이 설치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렇게 강가에
까지 소화전이 있는 걸 보니 자연스레 안전에 대한 제도적 장치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날씨가 무척 변덕스러워 바로 눈 앞에서 해가 쨍쨍거리는데도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일수였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는 물가에 드리워진 큰 나무 밑에서 수면의 동심원을 바라보는 맛도 좋았다. 







카누 타기를 끝내고 돌아와 저녁을 지어 먹고 밤 일정을 계획했다.
오늘이 바로 독립기념일인 7월 4일로 미국 도처에서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대한 불꽃놀이를 벌인다.
캠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불꽃놀이를 하는 장소가 있다고 해서 오피스에 문의해 그곳으로 향했다.

87번 도로를 타고 북쪽 26번 출구로 나가니 스크룬 마을 Schroon Town 이 나온다.
이곳에선 호수가에서 불꽃놀이를 한다는데 맨하튼에서 보던 것과는 감흥에서 비교가 안될 것 같다.
이미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온 차들이 가득이라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걷는데 강변 풍경이 참 시원하다. 





해가 지려면 3시간도 더 남았는데 그새 사람들이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빼곡히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이 이 마을이나 인근 지역 사람들로 보였고 우리같은 외지인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거의 유일한 아시안이었을 뿐더러 마을 자체가 유색인종을 찾아보기 힘든 백인지역이었다.





스크룬 마을은 이 호수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었는데 곳곳마다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예쁜 모습이 자연적인
비경과 잘 어우러졌다. 특히 이 언덕에 앉아 내려다 보는 옥빛 호수의 풍광은 만약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수긍이 갈만큼 가슴이 트이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호수 가 중앙에는 독립기념일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불꽃놀이에 앞서 합창단이 미국 국가를 비롯해
국가적으로 의미있는 노래와 나레이션이 계속 이어졌다. 행사는 내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깊은 애국주의적 기운을
뿜어냈는데 자리한 사람들의 호응 역시 마치 어제 막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것마냥 뜨거웠다. 
하지만 다들 가슴에 손을 올린채 일어서서 선서와 노래를 하는 속에 있는 것은 여간 뻘쭘한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호수 위 역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몰고 온 개인 보트와 요트들로 가득했는데, 불꽃 폭죽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
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경비정들이 끊임없이 개인 선박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어둠이 깊어질 수록 바다 위에 자리
한 수 많은 배들의 불빛들이 마치 무수한 별들이 투영된 것처럼 예뻤다.



불꽃놀이는 아무래도 맨하튼에서 하는 것에 비하면 규모 면에서 현격히 차이가 난다.
폭죽의 양은 물론이고 불꽃의 색상이나 모양, 움직임 등이 다소 밋밋한 편이다. 하지만, 이런 천연의 비경 아래
여유를 가지고 감상하는 불꽃놀이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우기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에서 예상치 않게 얻은 즐거움이니 마치 보석이 흩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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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즐거워!2009. 6. 5. 06:36

뉴욕, 롱아일랜드의 동북쪽에 그린포트 Greenport 라는 작은 항구마을이 있다.
맨하튼을 기준으로 출발하게 되면 차로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하게 되는데,
짙푸른 전원풍경이 끝없이 이어진 북쪽 작은 도로를 달리게 되면 가는 내내 기분마저 상쾌하다.



그린포트는 그 역사가 300년이 넘은 지역으로 1640년 영국의 탐험대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물론, 롱아일랜드 전체에 많은 인디언 부족들이 살고 있었으니 단지 서구인들의 시각에서라고 해야겠다.
본격적으로 항구로 자리를 잡은 것은 이곳에서 고래잡이 어업이 이루어지던 1800년 초부터이고
뒤이어 청어, 굴 어업 및 가공산업이 그린포트의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일등공신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몇몇 어선들이 항구에 있고 굴이나 조개를 이용한 음식점들이 많은 걸보면 어업은 여전히 진행 중인듯 하다.



하지만,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그린포트를 찾는 이유는 아기자기한 샵들과 잘 정돈된 마을풍경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마을과 관련된 기프트 샵은 물론이고 도심에선 보기힘든 지역 수공품 가게, 작은 옷 상점 그리고 저마다 특색있는
분위기로 사람들을 불러세우는 레스토랑들까지, 그린포트에 자리한 샵들은 하나같이 소박한 정성이 묻어난다.



위에 보이는 흰색 건물은 Sweet Indulgences 라는 일종의 인테리어 소품 가게인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갖가지 식물과 꽃들이 가득하며 철재 벤치나 풍향계 등 정원소품들도 눈에 띈다.
꽤 큰 규모의 가게 내부에는 접시, 보석, 액자, 조각품 등 다양한 상품들이 마치 박물관에 온 것처럼 구경꾼의 눈을
사로잡는데 굳이 아무것도 사지않고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참 재미난 곳이다.



한 장난감 가게의 쇼 윈도우에는 장난감 오리 Bath Duck 가 종류별로 한 가득이다.
아이를 목욕시킬때 물놀이 장난감으로 이 오리를 주면 엄마가 별 탈없이 목욕을 시킬 수 있다.



철물점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못쓰는 철제 쓰레기들을 이용해 귀여운 괴물들을 만들어 내는 가게가 있었다.
대부분 이런 상품들은 집 정원에 놓고 인테리어나 혹은 다양한 용도로 쓰이곤 한다. 



항구마을 답게 상점들을 홍보하는 이정표도 예쁘게 잘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린포트의 가장 아름다운 보물은 바로 미첼공원 Mitchell Park 이다.
바다 아래 쪽에 자리한 이 공원은 그리 크진않지만, 잔디나 피크닉을 위한 벤치, 공공화장실 등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그 형태적인 면에서나 자재의 선택에 있어서도 훌륭한 디자인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공원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북쪽을 향하면 유리로 지어진 원형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차나 커피를 마시는 까페겠거니 하고 발길을 옮기니..



우와! 그 안에 아이들을 태우고 신나게 돌아가는 회전목마가 있다.
이 회전목마는 Northrop-Grumman Corporation이라는 회사에서 이 마을에 기부한 것으로,
Sharples Holden Pasquarelli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이 원형건물은 오직 이 회전목마를 위한 것이라 한다.
회전목마는 별도의 탑승료를 받았는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라 아이들 틈에 끼어 아내와 함께 탔었다.



Osprey Sculpture
뉴 잉글랜드식 크램 챠우더 스프를 먹을 수 있는 바닷가 레스토랑을 찾으면 위의 조형물을 볼 수 있는데,
이 조형물은 월드 트레이드센터 붕괴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Roberto Julio Bessin이라는 미술가가 만든
것으로, 제작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붕괴된 월드 트레이드센터 구조물의 철제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규모가 상당해 모든 걸 압도한다.

그린포트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담긴 웹사이트가 있으니 필요한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도 좋겠다.
각종 볼거리 및 스토어 정보, 레스토랑, 그린포트로 가는 교통정보까지 잘 담겨져있다.
그린포트 관광 안내 페이지 : http://www.loving-long-island.com/greenpor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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